좀비
 
주저 앉았다. 오롯이 주저 앉았다.
아침에 일어났을 때만 해도 괜찮았다. 따듯한 물에 샤워를 하고 나와, 약간은 쌀쌀한 공기에 머리카락이 말라갈 때 즈음엔 어쩜 조금은 상쾌한 기분까지 들었을지도 모른다. 오늘은 월요일이다. 새로운 한 주를 시작하는 멋진 날이다. 반드시 그래야만 한다. 하지만, 그러한 기대는 직장으로 향하는 지하철에서 삼풍 백화점이 붕괴되듯 힘없이 무너져 내렸다.
갑자기 숨쉬기가 곤란해졌다, 폐 속 끝까지 숨을 들이킬 수 없었다. 얕은 숨만이 시큼하고 텁텁한 나의 입안을 맴돈다. 다리가 후들거린다. 서 있기가 힘들었다. 괄약근이 온전히 풀려 뱃속의 모든 것을 쏟아낼 것만 같았다. 조금만 고개를 숙여도 뜨거운 토사물을 쏟아낼 것만 같았다.
가장 기분 나쁜 순간이 찾아왔다. 그것은 오래된 녹처럼 스멀스멀 내게 다가오고 있었다. 이윽고 눈 앞의 것들이 색을 잃어갔다. 시커먼 회색 빛의 어둠이 눈의 가장자리부터 가운데로 조금씩 허나 착실하게 집어 삼키고 있었다. 눈 앞의 것들이 하나 둘씩 보이지 않기 시작했다.
무력감이 온 몸을 휘감았다. 다리가 풀리면서 몸은 폭파되는 건물처럼 무너지기 시작했다. 나는 쓰러지는 와중에도 허우적대며 팔을 뻗었다. 그것은 바다에 빠진 조난자의 그것과 비슷했다. 운이 좋게도 어디선가 흘러온 나무 판자에 손이 닿았다. 나는 있는 힘껏 그것을 잡았다. 물론 지하철이니 그것은 쇠의 재질을 하고 있었을 것이다.
나는 촛불이 꺼진 멍한 눈으로 팔에 머리를 기댄 채 주위를 둘러 보았다. 러시아워의 지하철. 그들 모두가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이상할 테지, 허나 그러한 것을 신경 쓸 여력은 없었다.
사람들이 우르르 내리기 시작했다. 나는 거기에 휩쓸려 갔다. 파도에 몸이 실리듯 아주 자연스럽게. 그것은 내 의지와는 상관없었다. 나는 그저 한 조각의 덩어리였다. 짐짝과도 같았다.
구로역. 내가 내릴 곳이 아니었다. 아니다. 어쩜 내가 내릴 곳이었다. 나는 화장실을 찾았다. 화장실로 발걸음을 옮기는 중간에도 아마득히 멀어지는 빛 줄기를 잡으려 온 기력을 다했다.
개표구 앞의 철제 펜스에 잠시 몸을 기대니 괜찮은 기분이 들었다. 어둠이 조금 물러가나 싶었다. 매일 아침 먹어야 하는 약을 오늘은 깜박한 기억이 난다. 아마 잘못은 거기서부터 시작 되었으리라. 오래된 시계의 태엽이 어긋나기 시작한 것처럼.

Posted by univio on Monday, September 28, 2009 | 3:52 pm  http://www.coffeepencil.com수정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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